KIA 타이거즈가 히어로즈와의 시즌 18차전에서 5-0 승리를 거두며 남은 한경기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2009년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날 KIA는 김상현의 시즌 36호 투런홈런과 최희섭의 시즌 32호 투런홈런이 연달아 터지며 아퀼리노 로페즈의 구위에 철저히 눌린 히이로즈를 농락했다. 이미 4강권에서 멀어진 히어로즈는 득점찬스를 잡고도 번번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며 이미 브룸바와 클락이 라인업에서 빠진 팀 현실을 대변해야 했다.



12년만에 정규시즌 우승, 타이거즈 야구 굴곡의 세월

KIA 타이거즈가 전신 해태시절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한게 지난 1997년이다.
1995년 시즌이 끝난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 불리는 선동열(현 삼성 감독)이 일본으로 떠났고, 김성한이 은퇴를 한 해태는 이후 강팀 반열에 올라서기가 쉽지 않다는게 당시 대다수 야구전문가들의 평가였다. 하지만 투타에서 이종범과 이대진이 건재한, 그리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주무기로 팀을 휘어잡았던 김응룡(현 삼성 사장) 감독은 모든이들의 예상을 깨고 1996-1997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명가재건이란 말이 없었던 시절의 이때만 하더라도 타이거즈의 영광은 현재진행형 그 자체였으며 실제로 호남팜의 야구자원을 감안할때 해태의 전성기는 영원할것 같았다.
하지만 이종범이 일본진출을 선언하며 팀을 떠난 1998년부터 암흑기가 찾아왔다.


이호준(현 SK)과 장성호가 싹수를 보이며 팀의 간판타자로 성장하던 이시절 해태는 모 기업의 재정난으로 김응룡은 물론 임창용까지 떠나며 인고의 고통을 보냈는데 2001년까지 단 한시즌도 4강에 오르지 못하는 약체의 이미지만 남겼다. 때를 같이해 돈이 없어 선수를 팔았던 고통을 중단할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영원할것 같았던 김응룡 체제가 김성한으로 이어졌던 시기도 이때였다. 이렇게 해태는 9번 우승의 영광만 남긴채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2001년 후반기 해태에서 KIA로 바뀐 후 이팀은, 구단의 지원을 발판삼아 서서히 강팀의 면모를 되찾아간다. 그리고 이해에 강남갔던 이종범이 돌아오며 잊혀졌던 해태팬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초대하는 계기도 마련한다.

하지만 2002년-2003년 2년연속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며 명가재건의 틀은 마련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언제라도 우승을 할것 같았던 KIA는 큰 경기에서 번번히 무너졌으며 2005년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꼴찌를 기록했고 2006년에는 4강에 들긴 했지만 이듬해인 2007년 다시한번 꼴찌로 추락하며 가을잔치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이 기간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그 수많은 일들의 대부분은 성적이 좋지 않은 팀들이 모두 그렇듯, 좋지 않던 것들로만 색칠해진 암측 그 자체였다. 이팀은 리빌딩이 아닌 이노베이션이 필요할만큼 모든게 엉망이었다.

2008년 조범현 체제로 전화한 KIA는 6위에 머물렀지만 올시즌 릭 구톰슨-아퀼리노 로페즈의 든든한 원투 펀치와 친정으로 복귀한 김상현과 최희섭의 폭주까지 이어지며 강팀으로 올라섰다. 특히 브레이크가 고장된 열차처럼 연전연승을 이어가던 `8월의 신화'는 뒤늦게 17연승으로 쫓아온 디펜딩 챔피언 SK를 물리치는데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한달이었다.




KIA 우승의 숨은 주역들

KIA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는데 있어 구톰슨과 로페즈, 그리고 김상현과 최희섭만 있었던건 아니었다.
이용규의 부상으로 인한 전력 공백이 생길때만 해도 우승은 언감생심이었고 그 공백을 잘 메우던 김원섭이 부상으로 이탈했을때만 해도 4강권은 가능하지만 우승은 가당치도 않았던 전력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데 있어 일등공신은 마무리 투수로 변신한 유동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한기주의 부진과 부상으로 빠진 마무리 걱정은 그가 있었기에 손영민이 빛을 발할수 있었으며 유동훈 그 자신도 자신의 진가를 재확인 시켰다. 타자 무릎근처에서 노는 공, 명품싱커를 바탕으로 좀처럼 장타를 허용하지 않는 그의 땅볼유도 제구력은 과거 선동열-임창용이 해태에서 뛰었던 시절 이상의 멋진 피칭이었다. 과거 김병현에게만 부여하던 수식어인 `언터쳐블' 을 올시즌 유동훈에게 이양해도 충분할만큼.


이종범도 빼놓을수 없다. 비록 전성기 시절의 플레이는 사라졌지만 그를 중심으로 뭉친 팀은 모래알에서 찰흙으로 변모시켰으며 필요할때마다 팀배팅을 하며 솔선수범의 귀감을 보여준 한해였다.
한때 은퇴설이 나돌아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이젠 V10의 어엿한 중심축이된 이종범은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수놓을 준비를 끝마쳤다.

마지막 우승을 맛봤던 선수중에 이대진,장성호,김종국도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특히 지옥같던 재활의 고통을 여러차례 극복하며 복귀한 이대진은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을 올해 정규시즌 우승으로 보상받았다. 1997년 당시 신인급이었던 장성호와 김종국 역시 이젠 팀의 고참으로서 한국시리즈를 맞이하게 됐다. 그냥 선배들이 하는것만 따라가면 됐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젠 이들이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팀을 이끌어갈 주역들이다.




조범현 감독이 반드시 칭찬을 받아야 할 부분


솔직히 운도 많이 따랐다. 김상현이 이렇게까지 잘해줄지 몰랐고 최희섭의 환골탈태한 모습 역시 작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와 같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조범현 감독이 반드시 칭찬을 받아야할게 있다.
바로 젊은 선수들을 적극중용하며 팀 성적은 물론 미래까지 보장된 경기를 펼쳐나갔다는 점이다.

신인 안치홍은 조범현 감독의 전략적 키우기의 선두주자답게 고졸 루키로서는 김태균 이후 첫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했고 4월 한때 1할 4푼대 타율에 머물며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대졸 2년차 나지완을 1군에 계속 두면서 스스로 깨우치며 경험을 쌓게해 20홈런 타자로 올라서게 한점은 상식 이상으로 대단한 일이다.


우승 압박감이 여타의 감독들에 비해 적었기에 나타난 선수기용이라고도 할수 있지만 이건 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재능은 있으나 경험이 부족한 선수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보여준 모범답안이었으며 조범현 밑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안치홍과 나지완은 하루에 10번씩 감독에게 절을 하라고 강요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작년시즌 이미 그 가능성을 발견한 좌완 양현종을 올시즌 10승 투수로 키워냈으며 손영민 역시 그의 스승 이강철의 특별관리로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불펜 자원으로 만들어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윤석민이 시즌 내내 잔부상에 시달리며 리그를 대표하는 우완투수 반열에서 잠시 이탈했지만 최근 몇년동안 윤석민이 겪어야 했던 것을 감안하면 조범현 감독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큰 부상이 아니라고 하니, 한국시리즈에서 윤석민의 멋진 피칭을 기대해 본다.



윤석구의 야구세상이 겪었던 타이거즈, 그리고 2009년


1996년 현대 유니콘스와 한국시리즈를 치뤘던 해태 타이거즈가 잠실에서 혈투를 펼쳤던 그 시간 필자는 군대에 있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것이 “야~ 전라도 새끼들은 왜 이렇게 야구를 잘하냐?” 는 인천이 고향인 소대 선임분대장의 횡포덕분에 김정수에 이어 경기를 매조지 하러 나온 이강철이 마운드에 올라올때부터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될때까지 침상 끝에 머리를 꼴아박으며 일명 `원산폭격'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해태 야구 덕분에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한시간동안을 고통속에 지냈던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리던 때로 기억되며 반드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마음속에 되풀이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1997년 가을, 전역을 하루 앞둔 그날 전역대기를 하고 있는데 신병이 들어왔다. 서울출신이란다. 그해는 LG와의 한국시리즈였다. 어떻게 했냐고? 그냥 편하게 보라고 했다.
내일이면 집에 갈 말년병장이 뭐가 아쉬움이 있었을까. 이종범이 이상훈을 상대로 광주 구장 센터로 공을 날려버리는 투런홈런을 보며 신병들에게 마지못해 박수를 치라고 했던 죄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1993년 삼성과의 혈투(박충식 선수의 압박이 떠오른다. 송유석과 선동열도)의 한국시리즈가 나에겐 마지막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였다. 현장에서 본게 그해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올해엔 현장에서 한국시리즈를 보게 됐다. 이젠 타이거즈 팬이 아니지만(난 야구 그 자체의 팬이니깐) 과거 내가 응원했던 팀이 어떻게 10번의 우승을 차지할지 역사의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특별한 포스팅을 준비중이다.(네이트 스포츠 야구칼럼 필진 손윤님과의 함께할 예정)
날이 밝기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끝이 보이지 않았던 KIA의 암흑기는 2009년을 깃점으로 새로운 태양을 맞이했다. 그것도 가장 밝은 빛으로...


사진/ 이강철=스포츠 서울 & KIA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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