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사연이 있다.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와 야구를 사랑했던 원인. 거기에는 다 나름대로의 우연이 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는 때가 되면 한줌의 바람이 머릿결을 스치듯 그렇게 휑하니 지나쳐 가는 바람이었다. 이젠 다시 바람을 볼수 없지만 그 우연은 필연처럼 그렇게 사람의 가슴속에 멤돌다 떠나 버렸다.


이종범이 19년동안의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26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전에서 은퇴식을 연 이종범은 화려한 은퇴식 만큼이나 눈물 속에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떠나는 영웅의 뒷모습을 가슴에 담아 두며 그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어린 시절 똘망똘망 했던 이종범을 기억하는 광주 시민들이 많다.

너 누구냐.어디 학교 댕기냐? “이종범이라고 하는디요. 서림 국민학교 다니고 있는데 왜 물어 본다요?” 지금도 광주 임동에 사는 머리가 흐긋한 어저씨들 중 이종범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태형(김기태 LG 트윈스 감독)이 야구한다고 나랑 안 놀아 줘서 뭐 하는가 싶어 찾아 봤더니 야구를 하고 있네요. 나도 기태형 따라서 야구나 해야 쓸랑갑소”

‘임동 꼬마’ 이종범이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동네 형이었던 김기태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한다. 그리고 이종범은 광주 충장중을 거쳐 광주 제일고, 그리고 건국대를 거치면서 국가대표 유격수로 화려한 아마츄어 생활을 보낸다. 실제로 이종범의 진가가 대내외 적으로 발휘됐던 건 건국대 시절이었다.


선동열(KIA 감독)이 그러했듯 대학 진학 후 꽃을 피웠던 대표적인 선수 이종범은(물론 고교시절에도 지역 야구팬들에겐 명물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한국 프로야구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많은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단지 그가 이룩했던 각 종 기록이나 우승 횟수가 다는 아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척박했던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이종범의 등장은 센세이션을 몰고 올 만큼 세기보다는 화려한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평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프로야구 초창기 때만 해도 한국의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현역 생활을 했거나 일본 야구에 대한 노하우에 익숙해진 후 국내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곧 절제 된 야구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풍토와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개인보다는 팀을 우선시 하는 문화는 이종범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눠 질 만큼 특정 선수의 개성이 그라운드에서 빛을 발산하는데 있어 제약적인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종범의 등장에 있어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은 게 이 부분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못할 선수들이 대부분이지만 1993년 이종범이 프로야구에 입문했을 당시 그가 모든 언론의 중심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원인의 가장 큰 부분은 “혼자서도 경기를 지배할수 있다” 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마치 야구는 투수 놀음이란 말을 부정하듯이 그렇게 이종범은 혼자서 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그런 선수였다.


해태 타이거즈라는 팀이 어떤 팀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종범의 프로 입단 초기의 혼자 치고, 혼자 받고 , 혼자 던지고, 혼자 2루에서 홈까지 파고 들고, 그리고 혼자 실책을 한 후 경기 막판 역전타를 치며 결자해지(結者解之) 했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997년 해태의 9번째 우승 이후 일본으로 떠나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국내 타자의 해외진출에 있어 이정표와 같은 일이었다. 비록 운이 따르지 않아 치명적인 부상, 그것도 타자라면 목숨과도 같은 팔꿈치 부상은 향후 그의 타격성향을 바꿔 버렸지만 이종범 이기에 이렇게나마 선수 생활을 이어갈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우타자의 우측 팔꿈치 부상은 회복된다 할지라도 제대로 된 타격을 할수가 없다. 스윙의 처음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우측 팔꿈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부상 과는 그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것은 마치 엉덩이를 꽉 움껴 쥐고 허리 회전을 해보라는 타격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원래 타격이란 그런 것이다. 국내 복귀 후 이종범은 예전과 같은 폭발력이 사라졌지만 팔꿈치 부상을 털고 그나마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한 선수다.



이번 이종범의 은퇴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일본시절 함께 플레이를 했던 주니치 드래곤즈의 현역 선수들의 축하 멘트였다. 은퇴해도 모자람이 없는 나이가 된 투수 야마모토 마사(46)와 타자 야마사키 타케시(44)가 아직도 이종범을 기억하며 그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을 멘트로 내보낼때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종범에겐 누구나 추억이 있다.

그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중요한 약속 대신 야구장을 찾았다거나, 그를 보기 위해 천리 길도 한걸음에 달려왔다거나, 그리고 그를 보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며 야구장을 찾은 팬들이 많다. 각자의 사연만큼이나 이종범에 대한 추억 역시 스펀지 처럼 흡수 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줄로 믿는다.


필자 역시 이종범에 대한 추억이 많다. 그중에서도 막 성인이 됐던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의 활약을 보기 위해 여자친구를 설득해 야구장을 찾았던 기억, 군 복무 시절 휴가때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음에도 야구장을 먼저 찾았던 이유도 이종범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그리고 그가 일본에서 돌아와 첫 경기를 인천 도원구장에서 모습을 나타냈을 당시 회사를 조퇴까지 하며 암표를 사 경기장에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이종범을 다시 볼수 없다. 그리고 바람도 그와 함께 떠났다.

하지만 19년동안 불었던 바람이 비록 떠나 갔을지라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질풍노도와 같은 이종범을 기억하며 훗날 그의 “백넘버 7” 을 회상할 것이다.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34년 동안 오직 야구만을 위해 걸어온 그 길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철 없던 시절 야구의 참맛을 알게 해줘 많이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사진/ KIA 타이거즈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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